#2.
경매의 꽃, 명도
어느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.
“경매의 꽃은 명도다.”
처음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.
왜 명도가 '꽃'일까?
경매 절차 중 가장 아름답고 화려해서일까?
하지만 이번에 직접 겪고 나니,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.
만개 직전, 봉오리에서 오랜 시간을 견딘 꽃이 마침내 활짝 피어날 때,
그 생기 넘치는 순간처럼—
내게 명도는 서른넷에 간만에 느낀 도파민, 생기 가득한 선물이었다.
나의 첫 명도 스토리
내가 처음 낙찰받은 물건은 특이한 상황의 부동산이었다.
채무자가 사망하여, 경매 사이트에는 ‘망 ○○’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었다.
즉, 채무자이자 소유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,
해당 권리는 상속인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.
이 사실은 문건 송달 내역에서도 유추할 수 있었다.
“채무자 겸 소유자 망 ○○○, ○○○ 개시결정정본 발송”
사실, 이 물건은 현장조차 보지 않고 낙찰을 시도했다.
(방문은 꼭 해야 했지만... 바쁜 나날 속에서 아내와의 시간을 선택했고,
예정된 임장 날짜에 현장을 방문하지 못했다.)
지금 돌아보면, 그때 방문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.
첫째 날 (매각 당일)
낙찰을 받고 나서 법원에 사건 열람을 하러 갔다.
하지만 당일 경매가 모두 끝나지 않아 오후쯤에나 열람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.
마음이 두근거리고,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.
하지만, “낙찰을 받으면 바로 명도를 시작하라”는 책 내용을 기억하고,
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.
- 관리사무소에 연락하기
- 법원 담당자에게 문의하기
둘째 날
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동·호수를 말하고 낙찰자임을 밝혔다.
그리고 (망) 소유주의 자녀들이 있는지, 누가 거주 중인지 물었다.
관리사무소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.
“아무도 안 살고 있을 거예요. 상속받은 자녀들은 따로 살고 있거든요.”
당황했다.
“아무도 없으면, 이걸 어떻게 명도해야 하지?”
혹시 (망) 소유주의 가족이나 지인과 연락이 되냐고 물었고,
그 동생분과는 연락이 가능하다고 했다.
나는 휴대폰 번호 대신 이메일 주소라도 전달해줄 수 있는지 요청했고,
관리사무소는 전달해보겠다고 했다.
셋째 날
연락을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.
회사 일정 때문에 법원 방문이 어려워 북부지방법원 경매1계 사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.
담당자는 사건 열람을 대신해주었지만,
“이해관계인의 연락처는 없다” 는 답을 받았다.
불안한 마음에 퇴근 후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.
(※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. 임장은 낙찰 전 필수입니다!)
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‘이상함’이었다.
누군가 살고 있을 거라 믿었지만, 우편함은 우편물로 가득했고,
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.

그래도 혹시나 해서 포스트잇을 조심스럽게 붙이고 돌아왔다.
(살짝 접어서 잘 보이지 않게…)

아 집 가기 전에 사진을 찍었는데 동네가 정말 조용하고 이뻤다.


넷째 날
집안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, 상속인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.
도어락 비밀번호만 알 수 있다면... 집 안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.
그러던 중 사건기록을 온라인으로 다시 열람하다가,
유레카!
송달된 문서에 상속인들의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.
곧바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주소지 거주 여부를 확인했다.
- 장녀: 서울 광진구 군자동 (세대주 확인)
- 차남: 경기도 양주 (본인 명의 집)
“직접 찾아가보자.”
그렇게 마음을 먹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왔다.
주말 (5~6일 째)
하지만 주말엔 돌잔치, 결혼식 등 바쁜 일정이 가득했다.
그렇게 소중한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다.
그리고 그날 저녁,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.
일곱째 날
문자는 낙찰받은 집 아랫집 주민에게서 왔다.
포스트잇을 함부로 봐서 죄송하다며,
누수 문제가 있어 연락드렸다고 했다.
What...? 누수?
(※이래서 임장을 꼭 해야 합니다...)
아랫집과 통화하면서 들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.
- 12층부터 시작된 라인 전체 누수 문제
- 상속인들과 연락이 안 돼 수개월간 조치가 늦어짐
- 현재는 온수·난방 모두 차단된 상태
- 완전한 해결은 되지 않음
관리사무소에 다시 확인해보니,
해당 라인의 누수 문제는 법정 공방 가능성까지 있다고 했다. (하지만 난 낙찰자라 법정공방에서 제외)
그렇지만, 일단 누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다.

여덟째 날 (명도 완료)
불안함을 이기지 못하고, 연차를 내고 본격적으로 명도에 나섰다.
관리사무소를 직접 찾아가 (망) 소유주의 동생분에게 다시 연락을 부탁했고,
상속인들이 사는 집도 직접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.
- 광진구 장녀 집 → 부재중, 포스트잇 남김
- 양주시 차남 집 → 출발 중, 문자 수신!
“전화 가능하신가요?”
이전 (망) 소유주의 동생 분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.
심장이 벌렁거렸다. 드디어!
곧바로 녹음 준비 후 통화를 시도했다.
명도 완료!
전화는 놀라울 만큼 협조적이었다.
- 도어락 비밀번호 전달
- 누수 관련 정보 공유
- 명도에 전혀 문제가 없음
이렇게 명도 끝...?
진심으로 감격했다. 도파민이 온몸에 돌았다.
바로 집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고,
비밀번호는 정확했으며, 집 안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.




끝으로!
누수 문제만 빼면 정말 완벽했다.
그리고 명도는 일주일 만에 끝났다.
전에 유튜브에서 본 적 있다.
“낙찰 후 일주일 만에 명도 완료는, 만에 하나다.”
나는 그 만에 하나가 되었다.
운도 있었지만, 나 정말 잘했다.
(하... 나 좀 멋있다.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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